밖에서는 안의 상황을 볼 수 없는 상자 하나를 준비합니다. 

이제 이 안에 고양이 한마리와 독가스가 들어있는 구슬을 동시에 집어넣고 상자를 밀폐시킵니다. 


근데 저 독가스구슬 안에는 독가스 구슬 벽을 1/2 확률로 때리는 입자가 들어있습니다. 

문제를 단순화 시키기 위해 입자가 구슬벽을 치면 구슬이 무조건 깨져서 고양이가 죽는다고 가정합시다. 

자 이제 고양이가 죽을 확률은 1/2확률이 되었습니다. 

살아있을 확률도 1/2이죠. 


하지만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보면 저 입자의 궤적을 정확히 예측 할 수 없습니다. 

단지 확률로만 계산 할 수 있어요.  

특정 시간에 입자의 위치를 정확히 계산해 내는것은 불가능합니다. 단지 우리에게 주어진 정보는 확률 뿐 입니다. 1/2. 


그러면 고양이는 죽었을까요, 살았을까요. 


고전적인 관점에서 보면 고양이는 죽었거나, 살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만약 고양이의 생사를 확률로만 말한다면, 이는 상자 안의 상황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거나, 계산이 부족하였거나, 측정능력의 한계에 다다랐을 때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정보가 부족하지도 않고, 계산이 부족하지도 않고, 측정능력이 부족한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양자역학적 관점에서는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상자 안에는 살아있는 고양이, 죽어있는 고양이가 함께 존재한다." 


물론 상자를 열어보면, 고양이는 분명히 죽어있거나, 살아있거나 합니다. (죽은고양이와 살아있는 고양이가 공존한다고 하여 고양이가 반쯤 죽어있는 상태는 아닙니다.)

만약 이 실험을 수없이 많이 반복하게 되면 그 비율은 정확히 1:1이 되겠죠. 확률이 1/2이니까. 

그러면 위의 말이 틀린것이 아니냐. 하여도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상자 안에는 살아있는 고양이, 죽어있는 고양이가 함께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가 상자를 열어서 확인하는 순간, 두마리의 고양이중 한마리만 남을 뿐이다." 


양자역학적 관점에서는 고전적인 관점과는 달리 "관측"하는 행위 자체가 운동상태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가능한 운동이 두가지라면, 두가지 가능성 "모두" "동시에" 존재합니다. 

어떤것이 진짜냐. 하는 궁금증에 "관측"이라는 행위를 취하면, 그 두가지 가능성중 한가지만 남게되고 이제부터는 고전적인 관점을 따라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양자역학의 출발입니다. 


또한 이런 기이한 현상은 "이중슬릿 실험"에서 아주 극명하게 나타납니다.